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효빈 김씨 (문단 편집) === 추측 === 그렇다면 이런 정도의 사건을 왜 13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끄집어 냈냐고 생각이 들 수 있는데, 이에 대해선 나중에서야 알았거나 위에서 말했듯 민씨 가문 제거를 위해서 였을 수도 있지만, 경녕군이 태어난 시기, 실록에 언급된 임오년 중 가장 경녕군과 일치하는 1402년을 통해 추측해보면 사건이 발생했던 때가 태종과 아버지 태조 이성계 간의 대립이 있었던 [[조사의의 난]]이 벌어지고 있어 태종이 그 사건에 집중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. 그렇기에 설령 알게 되었다고 해도 태종으로선 어쩔 수 없었을 것이 조사의의 난만 해도 초유의 사건인데, 왕인 아들과 태상왕인 아버지 간의 군사 대립이 겨우 마무리가 된 상황에서 왕실에 또다른 갈등이 생길 수 있는, 또한 왕실 이미지를 망가뜨릴 수 있는 사건을 들추는 게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고, 좀 상황이 안정된 시기인 몇 년 뒤에야 이를 끄집어 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